그레이트 디베이터스 MOV

그레이트 디베이터스

"모욕denigrate은 너희를 위한 단어지."
"라틴어로 NIGER모욕하다, 검다라는 뜻이지. 언제나 그렇지 않나?"

위 구절을 적어 놓은 것은 처음 안 사실이기 때문이다. niger가 저런 뜻이었구나. 이 이야기를 해준 것은 덴젤 워싱턴이 분한 미스터 톨슨. 미스터 톨슨은 미국 최초로 흑인 대학 토론팀(와일리)을 만들어 양성한다. 일단 소질있어 보이는 애들을 캐스팅한 후 자기네 집으로 부른다. 그래서 그 안에서 빡세게 경쟁을 시키다가 단 4명 만을 뽑는다. 그런데 웃긴건 그 '빡세게 경쟁을 시키다가'의 부분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아마 그랬겠지? 그냥 관람자가 그렇게 생각하게 할 뿐. (이런 부분이 말하지 않아도 알게 만드는 고급의 묘사 수법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한 50명 있었는데 마지막에 4명 된다는 데에서 걍 알 수 있는, 너무 당연한 거라서.) 근데 문제는. 이 영화는 뭐, 감동적이라 말 할 수 있긴 하겠지만.. 주인공들이 직면한 갈등은 도대체 어떻게 해결되는가에 대한 묘사가 부재하다는 점이다.

0. 방금 말한대로, 걔네 네명은 도대체 어떻게 토론팀이 되었는가? 
그냥 주인공이라서. 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겠다. 그러나 이 경우는 주인공 어드밴티치가 매우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예로, <테이큰>의 리암 니슨은 별로 다치지도 않고 사람들이랑 싸워서 이긴다. 오ㅒ?? 얜 주인공이고 얘가 다치면 안되고 이야기 전개에도 문제가 생기고... 거기에 어떤 물리적인 법칙은 별로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레이트 디베이터스>로 돌아와서. 걔네 네명은 처음 토론 수업부터 교수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대충 밑에 애들을 안경이, 다복이, 으악이, 노동이라고 정하자. (영어 이름 잘 기억안나서..) 안경이는 작년에 했던애, 다복이네 아빠는 교수인데 토론팀 교수랑 친구고, 게다가 다복이는 어린데 천재이고, 으악이는 '놀랍게도' 여자이기 때문이고, 노동이는 미스터 톨슨이랑 술집에서 우연히 마주쳤고..... 글쿠나... 얘들이 토론을 잘해왔는지 못해왔는지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뭐 여기 까지는 걍 이해한다 치자. 교수가 토론팀 애들 하나하나 다 붙잡고 왜 얘들은 토론팀이 될 수 없었는지 말해줄 수는 없으니까.


a. 그래서 으악이랑 노동이는 헤어졌어?

노동이는 토론팀과 함께 차를 타고 가다가 흑인이 나무에 목 매달려있고 그 주변에 백인이 서 있는 걸 목격한다. 더 무서운건... 흑인을 매달아 놓은 나무 밑에 불을 피워 놓아서 그 흑인이 죽어서도 끔찍하게 '익혀지는' 형벌을 받고 있는 모습. 충격을 받은 그는 혼자 술집에 가서 엄청 취한 다음에 어떤 여자랑 시시덕 댄다. 좀 끈적대는 스킨십 장면이 나오는데, 그걸 으악이와 노동이가 함께 보았다. 그래서 으악이가 엄청나게 화가 나서 토론팀을 그만두는 위기에 처한다. 근데 여기서 진짜 포기했다면 난 으악에게 실망했겠지만 역시 으악이는 다시 토론팀에 나온다. 그리고 노동이의 싸대기를 힘차게 갈긴다. 그리고 그 둘의 관계는 대략 정리된 것 같았지만.. 음.. 하버드 토론 전날 보니까 노동이가 으악이 자는 모습을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넌 자는게 젤 예뻐.'이런 오그라드는 대사를 치고 거기에 으악이가 크게 반발하지 않는 걸 보면 둘 사이는 그대로 지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왜 다시 둘이 사랑에 빠지게 되는지 모르겠...

b. 귀염둥이 천재 다복이는 어떻게 대중앞에 서는 두려움을 극복했는가?

다복多福은 동생과 내가 복스럽게 생긴 아이를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위 사진의 두 번째 아이. 누가봐도 제일 복이 많게 생기지 않았나? 암튼. 나는 이 영화에서 다복이라는 인물이 가장 사랑스러웠다. 만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대학교에 온 천재 다복이. 다복이는 속으로 으악이를 좋아한다. 그치만 으악이는 다복이에게 관심이 없다. 친구로서 좋아할 뿐. 솔직히 만 14살인데 어떻게 연애감정이 생기겠어. 그래서 노동이랑 썸씽이 생긴다. 다복이는 그럼에도 으악이를 좋아하는데, 무도회에서 으악이와 신나게 커플 댄스를 추는 상상을 하며 혼자 황홀하게 웃는다던가, 으악이랑 노동이가 밤을 함께 지새웠다는 걸 알게 되자 어버버 거리며 그래도 비밀을 지켜 주려 한다던가, 노동이가 다른 여자와 키스하는 걸 보았을 때, 진심으로 노동이에게 화 낸다던가.으악이를 좋아하는 마음도 사랑스럽게 묘사되었지만, 아버지를 향한 존경심을 저 무표정한 모습으로 연기하는 부분도 좋았고, 아버지에게 혼나는 상황에서도 미스터 톨슨의 비밀을 지키고자 하는 뚝심이 좋았다. 그냥 다 좋았다. 다복이는.

아무튼 이 사랑스러운 다복이는 농구로 치자면 식스맨의 롤을 가진 애였다. 4명이 팀이지만, 2명이 대표. 그리고 대표중 하나가 아프거나 뭐 그런 식으로 결장할 상황이 생기면 다복이가 나가게 되는 것. 다복은 계속 기회를 얻지 못하다가 토론의 주자가 된 날. 토론을 망치고 만다! 근데 문제는 어떻게 망쳤는지도 안 보여준다. 관람자들은 그 부분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기에 자, 저 아이가 어떻게 이 일을 극복해나갈까. 전혀 상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다복이가 그 다음에 맡게되는 토론은 하버드와의 토론. 킹왕짱이랑 만나게 된 것이다. 강철심장을 가진 인간이 아니라면, 한 번 졌는데, 그 다음에 맞붙게 될 상대가 킹왕짱이다- 아마 많은 연습을 한다 해도 첫 번째보다 못할 수도 있을 것이다. 트라우마라는 단어. 뭐 그런거 있잖아. 그런데 우리의 다복이는 해낸다. 토론에서 이기게 된 것이다!! 

그런데 왜? 다복이는 어떻게 토론에서 자신감을 얻고 더 나아가 그 토론에서 이길 수 있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다복이를 바꿔 놓았는가? 없었다. 그냥. 다복이는 주인공이고, 그래서 이 토론에서 이겨야 하고, 이 영화는 그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의 물결을 둥실둥실 선사해야했기에. 

b. 토론팀이 맡게 되는 주제는 항상 '사람들을 설득하기 용이한 것'이었다.

극중에서 와일리 토론팀이 토론해야하는 주제와 그에 따른 스탠스를 봅시다. 
예1: 불황이 끝나면 실업 구제는 끝나야 한다. 와일리는 'NO'
예2: 흑인들(여기서 nigro라 말한다.)은 텍사스 주의 대학에 입학이 허가되어야 한다. 와일리는 'YES'
예3: 시민 불복종은 정의를 향한 싸움에 도덕적 무기다. 와일리는 'YES'

단순하게 생각하면 와일리 토론팀이 서 있는 포지션이 모두 옳다. 흑/백-보수/진보 그런걸 떠나서 딱 봤을 때 정서적으로 뭐가 공감되겠어. 그리고 여기서 YES or NO는 와일리가 선택하는 게 아니라 토론 주최측에서 그걸 설정해준다. 그런데 딱 저걸 봐. 누가 봐도 와일리가 옳잖아? 불황이 끝나도 실업자가 있으면 실업자를 도와야겠지. 흑인들은 당연히 백인들과 함께 대학에 다녀야겠지. 시민이 만약 정의롭지 않은 나라의 order에 불복종하겠다면 그건 도덕적이겠지. 와일리 팀은 그 어떤 주제에서도 '공감을 얻지 못하는 포지션'에는 서 있지 않다. 토론이라는 건 그 논제를 지지하는 정확한 수치, 흔히들 말하는 FACT도 중요하지만, 그게 약간 빈약하더라도 청중에게 공감을 이끌어 낸다면 이길 수도 있는 게임이다. 그런데 와일리는 처음부터 너무 쉽게 먹고 들어간다. 
이게 영화의 장치인지, 실제로 이랬는지는 찾아봐야 알겠지만 실제로는 아닐 거라 생각한다. 영화 마지막에 이런 문구가 나온다. '와일리 대학 토론팀은 10년 동안 무패행진이었다.' 10년 간 토론을 하면서 영화에 나오듯 상대적으로 쉬운 포지션에만 있지는 않았을 터. 만약 이 영화에서도 와일리 대학 팀이 가지는 진짜 속마음과 토론에서의 YES or NO가 다른 편에 서 있었다면 이 영화의 얘기거리는 더 풍부해졌을 것 같다. 예를 들어, 토론 주제가 '우리는 가난한 사람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였는데 상대편이 YES포지션, 와일리가 NO포지션이라면! 그로 유발되는 갈등과 그를 헤쳐나가는 과정이 얼마나 재밌었을까? 꼭 으악이랑 노동이가 사귀고 그래서 복잡해지고 다른 여자 나오고 어쩌구저쩌구가 없고, 그냥 토론을 다양하게 보여주면서 토론에 집중했다면 정말! 괜찮았을 것 같다.

그리고... 왜 얘네는 이런 쉬운 주제만 받았을까? 얘네가 주인공이니까! 얘네가 정의니까!!! 아주 이분법적이다!

c. 노동이는 하버드 토론 전날 빡쳐서 나가더니 왜 갑자기 들어와서 감동드립을 쳤는가?

하버드와의 토론 전날, 다복이랑 노동이는 심하게 다툰다. 둘이 목소리가 너무 커서 으악이가 소리지르는 건 잘 안들렸는데, 아마 으악이도 같이 싸우는 것 같았다. 으악이가 좀 다복이 편이었나? 노동이가 빡쳐서 혼자 숙소를 나가더니 지 버릇 개 못준다고, 술집에 가서 어떤 여자를 만난다. 근데 그 여자랑 뭐 한 것도 없구, 걍 그 여자가 노동이 보면서 혼자 씨익 웃고 다음 장면이 노동이가 숙소로 다시 돌아와 애들에게 화이팅 하자! 으쌰으쌰! 할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다복이 니가 나 대신 나가서 토론해! 넌 어리지만 나보다 잘할거야!!! (근데 난 정말 이해가 안되는게, 그 여자가 노동이 엄마인가? 노동이가 환상을 본 걸까? 모르겠다. 그게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렇게 진행이 되지? 그냥 그 부분은 노동이가 여자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버릇을 결국 고쳤다, 뭐 이런걸 보여준 걸까?) 그러고 나서 미스터 톨슨이 수도 없이 하던 질문을 애들에게 던진다. 그 부분에서 애들이 막 우는데 그 대사는 바로 이 것.


"심판관은 누구지?"
"심판관은 신입니다." THE JUDGE IS GOD (위의 움짤)
"왜 그가 신이지?"
"적수가 아니라 심판관이 승자와 패자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네 적수는 누구지?"
"적수는 존재하지 않아."
"왜 존재하지 않지?"
"내가 말하는 진실에 무언의 이견을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래.. 애들에게 이 대사는 충분히 힘이 될 수 있었을 게다. 왜냐면 부재한 미스터 톨슨을 상기시키니까. (안 선생님..) 그렇지만 왜 저 대사가 갑자기 나오는지도 모르겠고, 노동이가 술집 갔다가 뭘 깨닫거나 이런 묘사도 전혀 없었는데 애들한테 돌아와서 미스터 톨슨 빙의해서 저러는 지도 모르겠고. 이 부분이 가장 미스터리다.

너무 미스터리라서 뭐 주인공이니까! 이 말을 못하겠다. 진짜 모르겠음.

d. 미스터 톨슨은어떻게 하버드에 방문하여 토론팀의 토론을 볼 수 있었나?

이 부분도 정말 이해가 안되었던게 학생들을 지도했던 미스터 톨슨은 토론팀애들이랑 같이 하버드에 가지 못한다. 그 이유는 미스터 톨슨이 사회주의 집회를 열어서 잡혀갔었는데 동네를 떠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가석방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안 간다. 아니, 못 간다. 토론팀애들이 하버드에 도착해서 갑작스럽게 토론 주제가 바뀐 것을 알게 되고, 미스터 톨슨에게 전화를 거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고, 미스터 톨슨의 주변 인물들도 다 그가 어디갔는지 모르겠다고 말을 했다. 그래서 애들은 멘붕. 
그래서 혹시 경찰한테 다시 잡혀간 건 아닐까? 무슨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좀 걱정했는데, 애들이 하버드에서 미친 듯이 토론하고 있을 때 어디선가 미스터 톨슨이 나타나더니 그걸 지켜보고 있다.. 뭐징. 그래, 아이들이 걱정되서 몰래 갔을 수도 있지.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나왔냐고. 그 동네를. 경찰이 기차에서 지켜보고 있고 그랬는데. 아무런 방법, 해결책도 없이 그냥 걔는 순간이동 하듯 뿅!하고 하버드에 도착한 것이다. 이런 게 말 은근슬쩍 지나갈 수 있으면서도 대표적인 부분이다. 해결 방법은 전혀 나오지 않고, 어느 순간 해결 되어 버리는 스토리 라인들. 
그러니까 사람들이 그가 어디갔는지 모르겠던 건, 걔가 하버드에 아무도 몰래 갔기 때문이다. 왜?? 미스터 톨슨은 주인공이니까!
거기 가서 애들 응원해줘야 하고 관객에게 눈물을 한 바가지 쏟게 만들어줘야 하니까! 주인공이라서 기차에서 경찰이 지키고 있어도 몰래 기차를 타고, 그게 안되더라도 수풀을 헤치고 나와도 아주 깔끔한 상태로 올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영화는 이렇게 말한다. 
역경의 역사는 BD야. B는 birth D는 death. 그 사이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 역경은 알아서 death단계로 넘어갈 거야. 
근데 인생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사르트르는 인생은 B와 D사이의 C다. 라고 했지만, 너무 간추렸다. B와 D 사이의 C는 얼마나 복잡한가. 단순히 저 대학에 갈까, 이 대학에 갈까? 뭐 이런 수준이 아니라는 거,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곳곳에서 C를 아예 삭제했다. 흑흑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말을 아끼겠다.
그러나 다복이의 귀여움을 느끼고 싶다면 괜찮은 영화 같다. 아, 노동이, 네이트 파커는 여기서 <국가의 탄생>보다는 별로였다. 캐릭터 자체도 비호감에 가까우므로.. 뭔가 더 정이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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