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MOV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a. 잡소리

한국영화 ㄱ부터 ㅎ까지! 프로젝트를 하고 있다. 아직 ㄱ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라 최근에 본 게 <걷기왕>-의 심은경에 빠져서 <수상한 그녀>, 어제 리뷰했던 <검은 집>, 깜찍한 정유미가 나오는 <가족의 탄생>, 마찬가지로 정유미가 출연한 짧은 영화 <가족같은 개, 개같은 가족>, 조선이 배경인 <간신>, <관상>, 네 편의 단편을 엮은 <가족 시네마>, 그리고 또.. <꽃피는 봄이 오면> 등등.
IPTV에서 서비스 하는 영화 위주로 보고 있다. 친절하게도 ㄱ부터 ㅎ까지 정리가 잘 되어있다. 리뷰를 쓰고픈게 있다면 <걷기왕>.
기억해 둬야지.

오늘은 <건축학개론>이랑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봤다. <건축학개론>은 한 3번에 걸쳐 본 영화이다. 내 스타일은 아닌 영화. 검색해 보니, <건축학개론>에 대한 짧은 평가 중 베스트를 먹은 게 '이 영화가 재밌지 않다면 불쌍한 청춘'이었다. 나는 불쌍한 청춘인가 보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 초반, 주인공 지소는 귀여운 목소리로 이솝 우화 하나를 소개한다. 그 우화의 교훈은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나보다 힘든 사람이 분명 존재하니 힘내서 살자. 나는 불쌍한 청춘이니까 건축학개론을 보고 재미를 느낀 사람들은 힘내서 살길 바란다. 당신보다 불쌍한 청춘이 여기 한 명 있습니다. 화이팅!

b. 재밌다. 룰루랄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중심가족-강혜정-지소-지석은 불쌍하다. 집도 절도 없으니. 아니, 사실 처음엔 불쌍하단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만큼 영화는 유쾌하게 진행된다. 예를 들어, 강혜정이 지석이를 레스토랑-마르셀에서 비누칠해가며 씻길 때, 불쌍하지만... 그보다 강혜정의 억척스러워 보이는 모습이 재밌다. 뭐 저리 뻔뻔해? 하면서 어이없기도 하고. 피자를 먹으면 받는 쿠폰을 꼬깃꼬깃 모아서, 몇장 안되지만 이거 받고 피자를 내놓으라는 지소의 모습에도 쟤가 얼마나 배가 고플까...라는 안쓰러움 보단 애가 변죽도 좋네! 게다가 이홍기가 피자가게 알바하면서 돈 빼돌리는 것까지 잡아내잖아? 영리하네. 끄덕끄덕. 이게 먼저 나온다. 집도 없고 돈도 없는 (게다가 아직 어른이 되려면 최소 10년은 걸리는 어린애 둘을 데리고 있는!) 아득한 상황에서도 강혜정 가족이 엉엉 울지 않고 신세타령 하지 않는 다는 것. 이 사실 덕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주인공의 불쌍함에서 좀 더 멀어질 수 있다.

그래서인지 잠시 슬픔을 잊고 영화의 다른 부분에 집중할 수 있어 좋았다. 젤 재미있던 건 개를 훔치는 방법을 적어 놓은 계획서. 계획을 말로 설명할 때 카메라는 지소의 설명에 따라 차례대로 계획서를 비춘다. 그 모습이 마치 애니메이션같아서 집중이 빡! 강아지 월리의 동선을 부루마불에 있는 말처럼 보여주기도 하고 갑자기 팝업이 나오기도 하고. 이런 모습들이 오밀조밀 예쁜데다가, 신박했다. (이런 영화의 장치들이 뭐든 손으로 만들어 쓰는 애니메이션 <패트와 매트>를 떠오르게 했다.) 

c. 대신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하여

~밖에는 없어. 
내 사랑은 너 밖에 없어. 나는 어릴 때부터 '~밖에 없다.'는 말이 무서웠다. 나는 동생이랑 나이차이가 좀 나는 편이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 엄마 아빠의 자식이라곤 나 하나였다. 그렇다면 내가 어린 시절 어떤 말을 듣고 자랐겠는가. 엄마 아빠한테는 '너 밖에 없어.' (물론 지금은 늬들 밖에 없다...로 바뀌긴 했지만 어쨌든) 그 말은 나를 외롭게 했다. '나의 밖'에는 아무것도 없다. 나는 오로지 혼자다. 그건 우주에 둥둥 떠 있는 내 육체를 떠오르게 만들었다. 잔인했다. 어린 시절 박힌 그 말이 아직도 내 무의식에서 작용하는 걸까. 나는 지금도 가끔 나 밖에 없다는 생각에 불안하다. '엄마 아빠에게는'이라는 따뜻한 전제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 밖에 없다는 문장은 절대적으로 공포스럽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대신할 수 없는 것들을 이야기 한다-라고 생각이 든 건 김혜자가 지소에게 자신의 아들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었을 때였다. 그에 이어서 월리가 김혜자의 아들이 키우던 강아지였다는 걸 알게 되었고. 

김혜자에게 대신할 수 없는 건 집을 나간 아들이었다. 심지어 유산마저 아들이 남기고 간 월리에게 남긴다. 김혜자에게는 아들 '밖에' 없어서, 외롭다. 이천희는 이런 대사를 한다. 고모한테는 나 밖에 없다고. 내가 다 물려받게 되있다고. 그러나 김혜자의 생각은 전혀 아니었다. 김혜자의 시선, 김혜자의 애정, 김혜자의 과거, 김혜자의 현재, 김혜자의 돈, 김혜자의 슬픔, 기쁨... 모두가 아들, 그리고 아들의 개 월리에게 향하고 있었다. 레스토랑 운영에도 별 생각이 없어 보인다. 레스토랑에서 얻는 수익은 모두 아들의 그림을 하나 둘 사모으는 데 쓰고 있다. 김혜자도, 아들도, 우주에 둥둥 떠 있다. '밖에는 아무것도 없으니까'

지소에게 대체할 수 없는 건 집을 나간 아빠였다. 아빠가 없으면 자신들의 집인 봉고차에 고장이 나도 고칠 수가 없다. 봉고차는 아무나 고치지 못한다. 지소의 아빠 밖에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 지소는 아빠가 돌아오면 가정이 예전처럼 돌아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아빠만, 오로지 아빠만 그 일을 할 수 있다.

영화는 마지막에 '대신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진 김혜자와 지소에게 선물을 준다. 김혜자에게는 지소를. 지소에게는 최민수를. 
김혜자는 지소에게 월리를 산책시키러 와달라 부탁한다. 오면 마르셀에서 아이스크림을 주겠다고. 그건 김혜자와, 아들이 남긴 월리에게 있어서 많은 변화를 가지고 올 터. 김혜자는 조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 아들과도 같은 월리를 맡겨본 적이 없었다. 아마 지소와 월리의 산책이 시작되면, 김혜자는 예전보다 외롭지 않을 것 같다. 지소는 가끔 김혜자를 찾아올 것이고, 월리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할 거고.
이어서... 고장났던 지소네 집, 봉고차는 아빠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손에 고쳐진다. 최민수의 손에. (최민수는 능력이 없다는 사실이 가족에게 미안해서 집을 나온 아빠다. 지소네 아빠랑 비슷한 상황.) 지소는 김혜자의 아들을 대신할 수 없고 최민수는 지소아빠를 대신할 수 없지만- 변하는 건 없지만 그래도 무언가 주변에서 뻗어온다. 따뜻한 무언가가. 지소는 개를 완벽하게 훔치는 데 실패했지만 지소가 만든 이 스토리는 등장인물들을 이렇게 변화시켰다. 따뜻했다.

+++) 오, 그러고보니 이거랑 조금 비슷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없지만.. 완벽하진 않았지만 괜찮아. 최민수가 웃기니까.


d. 최민수는 최민수 역으로 나와.

이미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을 봤다며, 동생이 해 준 이야기다. '최민수는 최민수 역할로 나와.'
지소가 최민수한테 아저씨는 집 없어요? 하니까 내 발이 닿는 곳이 내 집이다... 뭐 이런 대사를 하는데, 진짜 웃겼다.

e. 부모는 아이들 맘을 몰라!

지소는 최민수에게 딸이 보고 싶냐고 물었다. 최민수는 딸이 보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지소는 그 말에 이렇게 답한다.

'아저씨 딸도 아저씨 엄청 보고 싶어 해요. 아저씨는 상상도 못할 걸요.'


자식들은 부모님 마음을 모른다, 는 메세지를, 나는 책에서, 영화에서, 누군가의 말을 통해서... 많이 받아왔다. 그런데 부모님은 한 때 자식이였으면서 - 그리고 지금도 자식이면서 왜 자식들 마음을 모를까. 자식들이 부모를 얼마나 사랑하고, 얼마나 걱정하고, 그리고 부모에게 얼마나 미안한지. 부모님들은 그걸 상상하지 못한다. 그냥 맨날 너가 자식 낳아봐야 내 속을 알지-를 위시한 비슷한 말들만 하신다. 그래서 지소가 그 말을 해주었을 때 참 고마웠다. 그럴 때 있자나. 나는 모르는 내 맘을 나도 정의하지 못했던 내 맘을 누가 대신 얘기해줄때 좋은 거.


f. 누나는 동생 맘을 몰라!

지소와 지소친구는 개를 훔치는 계획에서 동생 지석이가 멍청하다고 배제시키는데, 지석이가 얘네들 보다 더 영리함.ㅋ 올.ㅋ
그렇게 이름에 '석'자가 들어갔단 이유로 배제당하던 지석이는 영화 마지막에, 지소에게 500원짜리 동전을 내민다. 500이라는 숫자 아래에는 네임펜으로 만 원 이렇게 적혀있다. 누나에게 500만원을 준 동생. 지소는 말없이 지석이를 꼬옥 안아준다. 
동생 지석이는 조금 여진구를 닮았다. 넘넘 귀여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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